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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반(反)민주주의자의 선정론(善政論)

 

A: 나는 사려깊은 사람들보다는 사려깊지 못한 사람들을 우대하는 정체를 택한 아테네 사람들이 싫습니다. 그러나 택한 이상 그것이 얼마나 우수한지를 실증해보이고 싶습니다.

우선 빈민이나 일반 대중이 부자나 엘리트보다 우대되는 것은 국가를 강하게 하는 원동력을 가진 사람이 바로 그들인만큼 참으로 당연합니다. 그리고 선거든 추첨이든 이 사람들이 국정에 참가하는 것도, 국회에서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든 발언할 수 있다는 규칙과 함께 당연한 권리죠.

하지만 대중은 다음 한 가지는 알고 있습니다. 그들을 대표하는 사람의 재능이 자신들의 운명을 좌우하는 군대의 장성과 같은 직책에는 그 분야의 전문가에게 맡기는 쪽을 택하지만, 반대로 그런 위험이 없고 안정된 보수나 기타 잡수입을 얻을만한 직책을 얻기 위해서라면 그들 스스로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다른 나라사람들은 아테네가 이렇게 신중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넓은 활동 분야를 주고 있는 현상에 놀라고 기가 막힐 것이나, 이것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지키고 또 강화하는 가장 좋은 길이란 점을 지금부터 설명하겠습니다.

온 세계의 사려깊은 사람들은 모두 민주주의의 적입니다. 왜냐하면 사려깊은 사람들의 특질이 시종일관된 사상과 부정을 기피하고 개선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하는 것에 있다면, 대중의 특질은 무지하며 무질서하고 뛰어난 자에 대한 질투에 있기 때문입니다. 빈곤은 불명예를 이끌고, 교육이 결여되면 저질과 무례함을 낳습니다.


B: 그러나 민주주의자들은 이렇게도 말하고 있습니다. 집회에서는 누구든지 말하고 싶은대로 지껄이게 둘 것이 아니라, 능력있고 사려깊은 사람들에게 우선 발언시켜야 한다고 말이지요.


A: 당치도 않은 소리! 집회는 보다 지적 수준이 낮은 사람들에게 자유로운 발언을 허락함으로써 이상적이게 됩니다. 왜냐하면 사려깊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익이 되는 것만을 제안하기 때문이지요.


B: 하지만 사려깊지 못한 사람들이 어느 것이 자신에에 이익이 되는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습니까?


A: 그들도 재능은 있지요. 무지하든 무능하든 이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단결'은 현명하고 재능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기 쉬운 경쟁의식, 그것으로 인해 생기는 분열보다 훨씬 강력하다고 말입니다.

물론 이런 사람들이 구성분자의 대부분을 이루어서는 이상적인 국가라고 말할 수 없지요. 그러나 이상적인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민주주의를 지키기에는 가장 적합합니다.


B: 확실히 대중은 선정 아래서의 노예보다 악정 아래서의 자유민 쪽을 택하겠지요. 이는 대중이 선정인지 악정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는 말인가요?


A: 아니지요. 관심은 대단합니다. 왜냐하면 사려깊지 못한 사람들은 당신이 말하는 악정 아래서라면 그들이 가진 힘을 더욱 휘두를 수 있고, 그들의 자유를 더욱 구가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당신이 추구하는 선정이 실시되면 상황은 전혀 달라진답니다.

우선 재능있는 사람들이 법을 만들게 되고, 그것에 의해 지위를 얻은 사려깊은 사람들은 사려깊지 못한 사람들이 멋대로 구는 것을 용서치 않을 겁니다. 정치도 사려깊은 사람들이 하게되고, 국회에서도 무책임하고 선동적인 발언은 자취를 감추게 되겠지요.

이렇게 하여 머지않아 선정이 실시되면 대중의 노예화는 실현됩니다. 그러나 아테네에서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런 사태가 생길 것 같지는 않습니다.

말을 아테네의 민주주의로 돌리자면, 선정이라고는 농담도 못할 지금, 아테네의 상황은 이후에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최대한 낙관적으로 생각해봐도 작은 개선이 한도일 겁니다. 민주주의 정체 아래서 일어나는 비능률, 무능한 자의 전횡, 일관된 정책의 결여는 이 정체에 체질적으로 수반된 결함이니, 근본적인 개혁이란 민주주의를 지키는 한 불가능할 겁니다.

물론 정치체계가 가지는 결함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몇가지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지요. 그러나 민주주의도 지키고 싶고, 선정도 필요하다는 말은 완전히 억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작은 개선이라면 물론 가능합니다.


B: 제가 생각하기에 아테네 사람들은 또 다른 면, 즉 외교 면에서도 사려가 깊지는 않은 것 같아요. 다른 나라와 공동전선을 펴야 할 때 아테네 사람들은 언제나 선택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가장 무능한 파트너를 택해오지 않았습니까.


A: 그랬을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그들로서는 여기에도 그럴듯한 이유가 있습니다. 혹시 동맹자 가운데 유능한 자를 택한다면 그 결과가 생각과는 달리 그들과 같은 생각을 가진 자들을 불리한 상태로 빠뜨릴 위험이 있어요. 왜냐하면 도시국가치고 그 구성분자중에 유능한 사람들이 대중에 호의를 갖고있는 예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것도 서로 닮은 사람들끼리 서로 돕는 다는 격언이 참되다는 것을 실증해줄 뿐이지요. 그 때문에 아테네 사람은 언제나 무능한 사람들이 지배하는 나라와 동맹을 맺어온 겁니다.

또 유능한 자와 동맹을 맺은 경우는 그 모든 것이 실패로 끝났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지요. 포에티우스의 좋은 예가 있지 않습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나라 대중은 노예 상태가 되었지요. 밀레투스의 경우도 마찬가지 입니다. 유능한 자가 아테네와 동맹을 맺어 힘이 강해지면 그 나라 민주주의자들은 언제나 철저하게 타도당하지 않습니까. 스파르타와 동맹을 맺은 경우를 생각해보시오. 스파르타는 아테네와 동맹을 맺음으로써 서로간의 공동의 적을 타도한 후 곧 아테네에 선전포고를 하지 않았던가요.


B: 화제를 바꾸지요. 개인의 권리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종종 듣는 말이지만, 아테네에서는 누구 한 사람도 부당하게 개인의 권리를 침해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저는 그리 이상적인 것도 아니라고 생각됩니다만...


A: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선에서 말하자면, 부당하게 개인의 권리를 침해받은 자가 있다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반동파에 속한 소수인으로서 문제삼을 만한 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도 완벽하게 민주주의 체제가 확립되어 있는 나라에서 그런 부끄러운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B: 저는 부당하게 침해당한 자를 일컫는 것으로, 어떠한 죄를 범해 정당한 벌을 받은 자를 말하고 있는게 아닙니다.


A: 그러나 대중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지금의 아테네에서, 벌받은 자의 대부분이 부당하게 벌받았다고 감히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아테네에서 벌받은 자, 즉 개인의 자유를 박탈당한 자는 공금횡령이나 공공이익에 거스르는 생각을 가진 자가 아니면 국가 반역죄를 저지른 자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공공이익이란 물론 국가의 다수를 다스리고 있는 사람들의 이익이라는 뜻이지만, 결과적으로 이익이 되지는 못해도 그런 것을 민주주의를 지키는 자로서 문제삼아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이러한 생각 속에서 지금, 아테네 민주주의의 진짜 적은 중우정치도 반체제파의 반격도 아닙니다. 다름아닌 선정이요, 선정을 추구한 나머지 민주주의에 대한 절대적인 신앙이 없는 자입니다.


B: 그렇다면 공격과 방어 자세를 바꾸어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말해봅시다. 자유를 지키고 확립하기에는 민주주의가 최고라고 많은 사람들은 말합니다. 더구나 반민주주의 진영에 속하는 사람들도 자유를 부르짖지 않습니까.


A: 그것은 자기 편을 속일 뿐 아니라 저 스스로도 속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들은 민주주의가 자유보다는 폭력과 가깝다는 사실에 아직 눈뜨고 있지 않답니다. 민주주의의 탄생은 폭력과 결부되어있다는 사실을 플라톤도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가난한 대중이 승리를 거두면 곧 윤택한 자들 몇몇은 살해당하고 살아남은 자는 추방당한다"

그러나 민주주의자들이 이 사실을 눈치채고 있다면 내가 말할 것은 없지요. 왜냐하면 민주주의의 근본 원리인 다수결제도는 50%에서 한표를 더 획득한 측이 자신의 신념을 강행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소수파의 의견도 존중하라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본원리에 반하는 것이지요. 문제는 어제의 소수파가 내일의 다수파로 바뀔 환경이 존재하느냐 않느냐로서, 혹시 만족할만한 상태로 그런 환경이 존재하는 나라라면 비로소 민주주의와 자유는 결부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상적인 상태는 오늘의 아테네에서는 절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데모크라티아(Democratia)의 '데모'란 다수를 뜻할 뿐 아니라, 시민들 가운데 가난한 자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가난한 자는 상대적인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결과적으로 그들은 언제나 다수파가 됩니다. 민주주의에서는 질에 대해 전혀 문제삼지 않습니다. 양만이 지배하는 세계니까요.


B: 어쩐지 절망적인 기분이 듭니다. 그러나 민주주의에는 자유를 수호하는 역할뿐 아니라 평등의 개념을 현실화한다는 명예도 있지 않습니까?


A: 완전한 자유를 얻는 자만이 완벽한 평등을 누릴 수 있다고들 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자유와 평등은 결코 양립될 수 없습니다.

우선 민주주의자들은 자유보다도 평등 쪽을 선호하기 때문이지요. 왜냐하면 자유는 순수하게 정신적인 만족만을 주지만, 평등은 하루하루 새롭게 작으나마 물질적인 만족을 주거든요. 평등의 개념을 급진화시킨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개개인의 자유를 파괴하는 데에 얼마나 공헌했는지를 돌이켜보면 그 이상의 설명은 필요없습니다.

참된 자유를 존중하는 자들은 법을 존중하지요. 이런 사려 깊은 사람들에게는 법의 확립이야말로 국민들의 활력을 불필요하게 소모하는 것을 막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한편 사려 깊지 못한 사람들은 인민 자체가 법이라는 그들의 선전에서 볼 수 있듯이, 법을 존중하지 않는답니다. 하지만 사려 깊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는 선정이란, 단 하나의 주의주장으로 해결될 만큼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민심 안정의 제2대 요소인 법의 평등한 실시와 이익의 공정한 배분은 어떤 특정 이데올로기의 성과는 아니니까요.

인류는 언젠가 요술이라도 써서 이익의 평등한 분배에는 성공할지 몰라요. 그러나 개개인의 머릿속에 든 것까지 평등하게 분배하기까지는 아무리 시대가 발달하더라도절대 불가능할 겁니다. 이 진실에서 눈을 돌리고 있는한 우리의 이데올로기 장난은 계속될 것입니다. 그것도 서로가 적대시하며 폭력적으로 말이지요. 묘비명조차 이렇게 새겨져 있지 않습니까.

'짧으나마 무지한 민중의 폭동을 제지한 가치 있는 삶을 산 남자들에게 바친다.'

by incipit | 2007/06/08 09:24 | Pastiches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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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언더보이 at 2007/06/08 17:30
오랜만이네요. 그런데 오랜만에 글을 남기셨는데 무거운 주제인것 같네요. 잘 지내시죠?
Commented by 나니 at 2007/07/21 10:01
그러니까...
... 이런글은 내게 너무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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